며칠 전 집 근처에서 열 발자국쯤 앞에서 길을 걷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시선을 잡는다. 풍성하지만 온통 하얗게 센 머리에, 약간 굽은 등, 남들보다 좁은 보폭과 빠른 걸음걸이가 영락없이 어머니의 뒷모습이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무슨 할 말이 있으신지 돌아서서 말씀하실 것 같아 거리를 유지하고 뒤를 따르자니 어머니가 남긴 말씀이 기억의 수면 위로 불쑥 떠 올랐다.
“ 삼일 남았어“
’뇌농양‘이라는, 들어 보지도 못한 병명을 받아 들고 황망했던 게 얼마 전인데 어머니는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나와 집사람을 침대맡으로 부르셨다. 어머니가 마지막 말씀을 남기려 한다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정신을 잃었던 며칠 전 일이 과연 현실이었을지 혼란스러우리만큼 차분한 목소리였다. 삼일, 생이 다하는 순간이 오면 알 수 없는 능력이 생기는 걸까. 자신에게 주어진 이승에서의 시간을 정확히 밝히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말씀의 핵심은 두가지였다. ’심폐소생을 하지 말 것 그리고 내가 다니는 병원에 자신의 시신을 기증할 것.‘
첫번째 부탁이야 건강하실 때 부터 늘 하던 말씀이었다. 때가 되면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이니 편하게 가고 싶다면서, 각종 기구를 주렁주렁 달고 중환자실에서 삶을 연명하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보내지 말라고 수차례나 부탁하셨었다.
두번째 말씀은 듣는 나 자신도 충격이었다. 30대 초반에 아내와 어린 딸아이를 남기고 병원에 누워버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향한 애달픔이 온몸의 뼈마디가 시리게 가슴에 박혔다. 그런 아들을 살려낸 병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으셨나 보다. 두 번째 유언을 듣는 순간 다시 건강을 회복하리라는 기대는 산산이 조각나 흩어지고 있었다. 어머님은 이미 떠날 준비를 마친 셈이었다. 나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감추느라 자꾸 고개를 돌리고, 어머니는 오랜 시간 동안 아픈 아들 곁을 지켜 온 며느리를 향해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이 뒤섞인 눈길을 주는 것으로 말씀을 마쳤다.
나는 어머니의 두가지 유언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말씀을 남긴 지 3일째가 되자 시작된 발작을 이성적 판단의 길을 순식간에 차단해 버렸다. 그리고 발작 증상을 멎게 하고 편하게 가시기 위해서라도 병원에 모셔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병원에 모신 후 발작증상은 없어졌지만, 6개월 동안 맑은 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다. 첫 번째 유언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두 번째 유언 역시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의사의 사망선고 후에 병원의 시신 기증 담당자에게 어머니의 의사를 전달했으나,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시신 기증은 기증 당사자가 건강한 상태에서 병원에 방문하여 기증 의사를 밝히고, 서류에 사인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러니 어머니가 유언하던 순간부터 이미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생략..
할머니는 여전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걷
는다. 목적지에 도착한 할머니가 어딘가로 들어가 버리고 달빛 속에 나만 남겨지면 어쩌지? 조급함과 함께 어머니의 뒷모습을 닮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등을 민다. 조금 다 가까이 가면 돌아보실까, 서너 걸음 차이로 거리를 줄인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볼까? 이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 그리고 곁눈질로 얼굴을 확인하려는 순간,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깨닫게 되는 것 하나.